1121 — ‘앗? 이것 같은 패턴이 연속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일자별 메모 (1121).
‘앗? 이것 같은 패턴이 연속되고 있는 것 같은데?’ 하고 인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무언가 동일성에 포섭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계열화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포섭되고 포획되는 것이다. 유형을 구분하는 것은 어떠한 의식의 기준을 가지고 무언가를 주체적 시각에서 프레임 속에 배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일상에서 무의식중에 무언가의 ‘유형’ 에 길들여져 있다. 누군가의 의도나 욕망에 의해 굳어진 프레임의 시각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유형화된 것에 쉽게 동의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프레임을 설정하거나 규정한 사람의 시각에 포섭되고 포획된 것이다. 이것은 그 사람의 사유에 자신의 생각이 지배당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동일성을 갖게 되는 포섭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 단계에서 다른 것이 나오면 (이물질들! 계열에 질서에 반항하는) 이제 차이를 지각하게 된다. 그래서 차이를 지각하는 것은 인식이 작용하는 것이다. 들뢰즈의 사유에서 차이와 반복의 개념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주체와 객체 대신 생성과 사건 등의 전혀 다른 듯한 것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들뢰즈의 사유에서 주체인 나와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간 것일가? 그는 이것을 차이와 반복의 개념으로 보았다… 같은 규칙 - 유일한 절대적인 축, 절대적인 규칙 (절대적인 선, 절대적인 정답, 계열화 - 상급지-하급지) 정답을 찾기 높은 점수 찾기 (100점) 반포 X 자이 = 100점, 그 밖에 다른 모든 것은 100점 아래에 있다. <반포자이즘>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평면적 욕망의 구조, 이른바 ‘반포자이즘’을 시스템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인터랙티브 웹 아트워크다. 작가는 동시대 한국인의 삶이 ‘반포’ 라는 위치 기호와 ‘자이’ 라는 브랜드 기호의 곱, 즉 ‘위치X브랜드’라는 2차원 평면 위의 좌표값으로 환원되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 2차원 평면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수학 소설 <플랫랜드> 속 세계와 유사하다. 개인의 욕망과 인생의 목표는 벡터 공간상에서 거세된 채 오직 위계질서속 ‘우상향’을 향해 질주한다. 그러나 고차원의 시각에서 봤을때, 이 평면 위의 분투는 ‘우물 안 개구리’의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며 실재를 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질주다. 작품은 멀티-디바이스 웹 환경을 통해 이 납작한 2차원 세계에 균열을 가한다. 관람객의 모바일 디바이스는 ‘의미의 슬롯머신’으로 기능하며, 관람객은 스크롤 인터랙션을 통해 견고한 기호들을 해체한다. 이러한 미시적인 기호의 교란은 대형 스크린상의 도시 풍경을 변화시킨다. 획일적인 아파트 그리드는 관람객의 개입으로 예측 불가능한 형상으로 왜곡되고 부유하며, 2차원을 넘어선 고차원의 복잡계로 진화한다. 결과적으로 <반포자이즘>은 부동산 계급표로 대변되는 ‘안간의 벡터화’에 저항하며, 더 높은 차원의 미래와 도시 모습을 사유하게 하는 포스트구조주의적 면모를 띈 작품이다.